일상/책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보건교육사 리창 2016. 8. 14. 00:01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지음, 용경식 옮김 -



<자기앞의 생>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인칭 시점의 소설입니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하고, 삶을 버텨내는 주인공 '모모'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 책은 1956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받은 바 있는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1975년 발표한 책입니다.

그는 이 책으로 평생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공쿠르 상을 또 한번 받았습니다.

1980년.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자신의 삶이 작품 속에서 확장되어 온전히 하나가 되기를 바랐던 걸까요?


그가 사망하고 6개월 후에 발표된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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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어느 일간지에 나에 대한 칭찬 일색의 평이 나온 적이 있었다.

소설<유로파>에 대한 것이었다.

일 년 후. 나는<마법사들>을 발표했는데, 같은 비평가가 같은 신문에 한 페이지 가득 지독한 혹평을 실었다.

몇 주 아니면 한 달쯤 뒤, 나는 그 사람을 시몬 갈리마르 부인의 저녁만찬 자리에서 만났다.

그녀는 좀 불편해 보였다.

“<마법사들>에 대한 저의 혹평에 놀라셨지요?”

“으음......”

“<유로파>에 대해 그렇게 호평을 했는데도, 당신은 저에게 감사의 말 한마디 없으시더군요......”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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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소개>


처음에 나는 그녀가 나를 잘 구슬려서 달걀을 도로 찾으려고 그러는 줄 알고 호주머니 깊숙이 든 달걀을 더 꼭 쥐었다. 그녀는 벌로 나를 한 대 갈겨주기만 하면 되었다. 실제로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그렇게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일어서서 진열대로 가더니 달걀을 하나 더 집어서 내게 주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한순간 나는 희망 비슷한 것을 맛보았다. 그때의 기분을 묘사하는 건 불가능하니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 나는 그날 오전 내내 그 가게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며 서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따금 그 맘씨 좋은 주인 여자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는 손에 달걀을 쥔 채 거기에 서 있었다. 그때 나 나이 여섯 살쯤이었고, 나는 내 생이 모두 거기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겨우 달걀 하나뿐이었는데......



......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



로자 아줌마는 낮 동안 맡고 있는 아이들과 먹고살자면 한 달에 천이백 프랑은 있어야 했다. 그 외에 약값도 필요했고, 이젠 누가 주려고 하지도 않는 외상값까지 갚아야 했다. 아줌마 혼자 배를 곯아가며 빠듯하게 지낸다 해도 하루에 십오 프랑은 필요했다. 그녀에게 덜 먹으려면 살을 빼는 수밖에 없다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세상에 혼자뿐인 노친네에게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



“로자 아줌마, 왜 내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녀는 정말 놀라는 것 같았다.

“내가?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했다구?”

“열네 살인데, 왜 열 살이라고 하셨냐구요.”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로 그녀는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나는 와락 그녀를 끌어안았다. 한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한 팔로는 마치 여자를 안듯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자기 앞의 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