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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 김연수 / 문학동네

18p. 사람들은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존재의 기본값은 행복이다. 우리 인생은 행복의 바다다, 이 바다에 파도가 일면 그 모습이 가려진다. 파도는 바다에서 비롯되지만 바다가 아니며, 결국에는 바다를 가린다. 마찬가지로 언어는 현실에서 비롯되지만 현실이 아니며, 결국에는 현실을 가린다.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불안이 시작되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으리라, 행복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는데 왜 불안해지는가?” ‘행복’이라는 말이 실제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대신한 언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뜻이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이야기의 형식은 언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 역시 어떻게 말..

일상/책 2024.02.19

상처 떠나보내기

단정적인 말투는 갈등을 불러온다. 단정적인 태도 역시 갈등을 일으킨다. 대화의 행간에 여유가 있고, 관계에 공간이 넉넉하다면 부딪혀서 불꽃이 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녀나 배우자나 친구들을 대하는 자신의 말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 어떻게 의견을 개진하는지, 그리고 그런 태도가 상대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관찰해보면 좋겠다.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상대도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 때만 받아들이는 것도 유아적 폭력이라 부를 만하다. 자기 기분대로 상대의 행동을 판단한다면, 경계선 성격 성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영향력을 팽창시켜 상대의 감정 턱 밑에까지 들이대는 행..

일상/책 2023.09.05

지지 않는다는 말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세상의 기쁨과 고통에 민감할 때, 우리는 가장 건강하다. 때로 즐거운 마음으로 조간신문을 펼쳤다가도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물론 마음이 약해졌을 때다. 하지만 그 약한 마음을 통해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된다. 마찬가지로 가장 건강한 몸은 금방 지치는 몸이다. 자신은 지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약한 것들은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리고, 쉽게 상처받고, 금방 지치는 사람이다. 다행이도 원래 우리는 모두 그렇게 태어났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을 썼다. 소설 얘기는 하지 않고 건방지다거나 세상에 너무 화를 내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

일상/책 2023.09.04

당신. 꽃잎보다 붉던

"인혜야, 엄마 왔네. 저어기, 저기 엄마!" 일흔이 넘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것은 그것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선가 보고 들었을 법한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작품을 다 읽고 느낀 감정은 완전한 새로움이었다. 몇몇 장면들은 영화처럼 선명하게 기억에 남고 세련되게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의 필력에 감탄한다. 선이 굵은 소설이다.

일상/책 2023.09.03

소설가의 일 - 김연수 산문

앤서니 버제스가 말한 것처럼 모든 악평은 작가의 심장을 찌르는 비수와 같다. 손가락 정도라면 참을 수 있으리라. 허벅지라고 해도 견뎌야만 한다면 견뎌보겠다. 하지만 심장이라면 좀 곤란하다. 죽이려고 찌르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잘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작품만큼이나 그 작품을 쓰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품과 작가는 동시에 쓰여진다.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그 작가의 일부도 완성된다. 이 과정은 어떤 경우에도 무효화되지 않는다. 만약 국가가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불태운다고 해도 그 작품을 쓰기 전으로 그를 되돌릴 수는 없다. 한 번이라도 공들여 작품을 완성해본 작가라면 그 어떤 비수에도 맞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안다. 원래 소설가는 좀 호들갑스럽다. 왜..

일상/책 2023.09.02

식중독 균 - 클로스트리듐 퍼프린젠스

클로스트리듐 퍼프린젠스(Clostridium perfringens)는 매우 흔하게 발견되는 세균으로, 토양, 먼지, 물질 등에 존재하며, 사람과 동물의 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제4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세균은 운동성이 없는 혐기성의 아포 형성 간균으로 음식 내에서 균이 증식하며, 장독소를 생산하여 복통과 설사를 일으킨다. 건강한 사람과 동물의 소화기계에 산재해 있으며 토양에서 포자로 수년간 존재하기도 한다. 주된 전파경로는 오염된 음식이나 물(지하수 및 음용수 등)이다. 사람 간 전파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복기는 짧아서 6~24시간이며 대부분 10~12시간 이내에 발현된다. 치사율은 약 0.05%(1만 명 중 5명)으로 낮은 편이다. 따라서 격리 치료는 불필요하며..

건강/감염병 2023.06.18

정미경 – 당신의 아주 먼 섬

52p.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공간을 쳐다보았다. 빛의 산란 같기도 하고 먼지 같기도 한 자잘한 입자들의 운행 너머 나무 선반이 있고 그 선반을 책들이 채우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듬성듬성 벽면이 보일 만큼. 왜 그런 백일몽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다. 내려오기 전부터 정모는 의식적으로 책을 멀리하고 있었다. 읽기는커녕 곁에 두지도 않았다. 신경증적인 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백일몽은 단숨에 정모를 사로잡았다. 136p. 절벽 아래엔 동굴이 하나 있다. 높이는 겨우 앉은키 정도이지만 꽤 깊고 안쪽은 입구보다 넓었다. 턱에 걸터앉으면 꽤 먼 섬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이우는 혼자서도 거기까지 자주 걸어가 싫증이 날 때까지 앉아 있다 돌아오곤 했다. 자잘한 모래와 자갈이 섞인 바닥에 나란히 앉아 젖은 바위에..

일상/책 2023.06.16

임신성 당뇨병: 운동요법에 대하여

임신성 당뇨병(Gestational Diabetes Mellitus)은 임신 중에 발생하는 당뇨병으로, 일반적으로 임신 중·후기에 발생합니다. 임신 중에는 모체의 호르몬 수치가 변화하면서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혈당 수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는 태아에게 더 많은 글루코스 공급을 가능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몇몇 여성들에서는 이 변화에 인슐린 생성이 충분히 증가하지 않아, 혈중 글루코스 농도가 너무 높아지며 임신성 당뇨로 진행됩니다. 만약 임신 중에 당뇨병이 발생하게 된다면, 태아나 모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임신성 당뇨병이 있는 엄마는 제왕절개, 고혈압 임신증후군 등의 위험성이 높아지며, 아기는 과체중 출산, 초기 출산, 호흡 문제..

건강/정보 2023.06.11

흡연과 당뇨병: 금연해야 하는 이유

경기남부금연지원센터 양소이 간호사의 언론인터뷰(뉴스프리존, 2023.04.20) 내용에 따르면 “당뇨병 대상자는 금연이 중요하다. 니코틴이 교감신경을 자극해서 인슐린 분비와 인슐린 사용 능력을 떨어뜨려 혈당 수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또 당뇨병 자체만으로 동맥경화증의 발생 위험 및 진행이 더욱 촉진될 수 있는데, 흡연까지 하게 되면 담배에 포함된 니코틴과 일산화탄소 등이 혈관벽의 내피세포를 직접적으로 손상시켜 대혈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며 당뇨병 환자의 금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흡연이 당뇨병 발병률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여러 연구에서 흡연이 2형 당뇨병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Willi et al.의 메타 분석에서는 흡연자들이 비흡연자에 비해 2형 당뇨병의 위험성이 ..

건강/정보 2023.05.21

음주와 당뇨병: 복잡한 관계에 관하여

당뇨병은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건강 문제입니다. 그리고 알코올 섭취는 많은 문화에서 사회적 활동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며, 때때로 건강에 좋다는 주장과 더불어 그 위험성을 간과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음주가 당뇨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당뇨병을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음주와 당뇨병의 관계는 복잡합니다. 일반적으로, 과도한 알코올 섭취는 당뇨병과 다른 건강 문제의 위험을 동시에 증가시킵니다. 혈당조절 부분에서 살펴보면 알코올은 간에서의 글루코스 생산을 억제하여 저혈당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Howard et al., 2021). 반면에, 적절한 양의 알코올 섭취는 당뇨병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이러..

건강/정보 2023.05.13

고래 – 천명관

216p. 잠시 후, 금복의 몸 구석구석을 찍은 엑스레이 사진이 나오자 그녀는 마치 진기한 보물지도를 들여다보듯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탐스러운 머리카락과 풍만한 엉덩이, 뜨거운 눈빛과 발그레한 뺨은 모두 사라지고 죽은 나무 삭정이 같은 앙상한 뼈만 하얗게 남아 있었다. 금복은 사진을 집으로 가져와 전등불에 비춰보며 홀린 듯 며칠동안 관찰하다,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니까 다 껍데기뿐이란 말이군, 육신이란 게 결국은 이렇게 하얗게 뼈만 남는 거야. 그녀가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발견한 것은 바로 죽음 뒤에 남게 될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죽어지면 썩어질 몸’이란 말을 자주 되뇌었다. 그리고 곧 내키는 대로..

일상/책 2023.04.30